남한 동지들과의 토론을 위한 테제 초안
미하엘 프뢰브스팅, RCIT 국제서기 2019년 12월 6일
1. 남한은 2000년대를 거치며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발전의 주요 특징은 남한이 일차적으로 국내 독점 부르주아지 (재벌)가 지배하는 고도로 선진화된 자본주의 경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남한 독점자본은 글로벌 자본 최상위 리그에도 들어가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등의 기업들과 경쟁한다.
2. 이러한 상황은 여러 요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한은 아시아 4대 경제국, 세계 11대경제국이 되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이탈리아와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3. 상위 10대 재벌이 남한 전체 사업 자산의 27%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남한 독점 자본가들의 국내시장 지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다. 5대 재벌 ㅡ 삼성, LG, 현대 SK, 롯데 ㅡ 이 국내 증시 가치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삼성그룹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 한 기업이 전 세계에 걸쳐 30만 명이 넘는 인원 (애플 12만3000명, 구글 8만8000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을 고용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삼성전자는 남한 GDP의 14% 이상을 점해 왔다.
4. 남한 재벌의 글로벌 역할과 세계경제에서 남한 재벌이 차지하는 강력한 지위는 글로벌 톱 기업들 사이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 포브스 글로벌 2000대 기업에 포함된 나라별 기업 순위에서 남한이 5위,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는 7위 (남한 기업 16개가 포함되어, 6위 영국보다 단 1개 차이로 7위)에 올라 있다.
5. 한국 독점 부르주아지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자본수출의 거대한 역할이다. 이것은 한국 자본이 세계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반식민지 나라들에서 노동자 · 피억압자를 초과착취 한다는 것을 뜻한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연간 해외직접투자(FDI) 유출이 유입보다 항상 2배에서 3배 컸다. [자본 수출이 수입보다 항상 2-3배 더 컸다]. 다음 수치는 남한이 2000년 이래 제국주의 국가로 전화되고 있는 과정을 보여준다. 2000년에 외국인직접투자 유입 잔액은 유출 잔액의 두 배 이상이었는데 (437억 달러 대 215억 달러), 이후 이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하여 2018년에는 자본 수입보다 수출이 훨씬 더 커졌다. (2314억 달러 대 3876억 달러). [남한이 명백한 주요 자본수출국이 되었다는 사실].
6. 그러나 남한은 새로운 제국주의 국가로서 특수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다. 이 특수한 역사가 남한의 자본주의적 본질에 특수한, 복잡한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남한 사회주의자들이 ‘자’국이 제국주의 국가로 전화한 것을 인정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ㅡ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ㅡ 가 바로 이 특수성에 있다.
7. 다른 많은 제국주의 국가들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대국 또는 식민 강국으로서의 역사적 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유럽 열강이나 러시아처럼). 한 때 반식민지였던 중국도 한국과는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40년부터 1949년까지 중국은 강대국들에게 침략과 굴욕을 당했지만, 이전 수백 년 동안에는 타국, 타민족 (무슬림 인민, 티베트, 베트남, 조선)을 억압하는 강대국이었다.
8. 한국은 다른 민족을 억압한 적이 없고, 오랫동안 지배계급 ㅡ 조선 왕실을 우두머리로 하는 ㅡ 이 나라를 외부 세계로부터 격리시켰다는 점 (“은둔의 왕국”)에서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세기부터 계속해서 조선은 강대국들의 침략을 겪었고, 1910년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점령 기간, 이 일제 강점기는 1945년까지 지속되었고 가장 잔혹한 억압을 가져왔다. 일제의 패망 직후, 한국은 야만적인 전쟁을 맞아 수백만 명이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때 이래 남한은 미 제국주의에 점령되어 반식민지가 되었다.
9. 남한은 북한과 그 동맹국 중국·소련에 대항하는 냉전의 최전방 국가가 되었다. 미국과 남한의 부르주아지는 잇단 군사독재 정권들을 통해 서방 제국주의 진영에 대한 정치적 충성과 함께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를 확보해 왔다. 그러나 냉전의 "최전방국가"로서 남한은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상당한 정치적 지원과 재정적, 경제적 원조를 받았다. (이는 1948년 이후 서유럽에 대한 미국의 마셜 계획과 어느 정도 닮았다). 남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대규모 초과착취, 1987년까지 일련의 군사독재 정권, 국가자본주의적 경제 조정, 제국주의 원조 등이 결합하여 남한 자본주의의 급속한 경제 발전을 가능케 한 예외적인 상황을 낳았다. 특히 강력한 산업과 독점 기업 (재벌)의 창설을 도왔다.
10. 1987년 군사독재의 몰락과 1989-91년 소련과 동유럽에서의 스탈린주의 지배의 붕괴는 남한 자본주의에게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1987년과 그 후 몇 년의 결정적인 기간에 많은 영웅적인 파업과 공장점거가 이어진 일련의 중요한 계급 전투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부르주아지를 패배시키지 못했다. 실제로,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인해 남한 자본은 군사독재를 재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반혁명을 통해 노동자 전위를 패퇴시킬 만큼 충분히 강했다. 이는 1987년 이후 등장한 제한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폐지하지 않고서 노동자운동을 패퇴시키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남한 독점 부르주아지가 모종의 노동귀족을 창출하고 매수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었다.
11. 이러한 발전은 이미 남한 부르주아지가 더 이상 약하고 반식민지적인 자본가계급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남한의 제국주의로의 전화를 증명해준 결정적 시험대는 남한이 1997-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파멸적인 결과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남한 국가는 ㅡ 세계 시장의 압력 하에 ㅡ 재벌들을 재편하고 그들의 금융 시장과의 관계를 재정비했다. 남한 국가는 또한 외국 자본에게 국내시장을 개방했고, 그와 동시에 해외시장에 수출과 투자를 증가시키기 위해 남한 독점 자본가를 지원했다. 또 대부분의 재벌들은 외국 자본가들과 동맹을 맺었는데, 이는 세계화 시기에 다른 많은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일어난 과정이다. (예: 르노-닛산-미츠비시, 피아트-크라이슬러 등등).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남한 주요 재벌가들은 그들의 기업 내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12. 명백한 바, 신흥 남한 제국주의는 그 역사의 특수성으로 인해 매우 특수한 제국주의인 것이 사실이다. 남한 제국주의가 강력한 경제적 지위에 있지만, 그 정치적 역할은 1945년 이래 미 제국주의의 지배적인 영향력에 여전히 압도되고 있다. 이것은 제국주의 국가에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 패전과 피점령 이후 일본에도 비슷한 형국이 존재했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 병력 및 기지의 존재와 일본 헌법의 강제된 "평화주의"적 성격은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군사적 자율성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1990년까지 서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존재했다.
13. 그러나 2019년에 시작한 한일 무역전쟁은 미 제국주의의 지배력 쇠퇴와 한국 및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독자성의 증대를 반영한다.
14. 남한 노동자운동 및 좌파의 그 어느 조직도 남한의 제국주의 국가로의 전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이 남한을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간주하고 있다. (스탈린주의적, 민족주의적 정치를 지지하는 소위 "민족해방(NL)" 조류). 일부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아 제국주의"로 규정한다.
15. 이와 같이 제국주의로 인정하는 데 실패하는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위에서 언급했듯이, 남한 독점자본은 노동귀족을 창출하고 매수할 수 있었다. 이 노동귀족 층은 노동조합 관료와 개량주의 당의 중요한 물질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 다른 많은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보듯이, 개량주의는 ‘자’국 부르주아지에게 기회주의적으로 영합하고 “조국”에 대한 사회애국주의적 지지를 전도한다. 민족주의적 정서를 이용해 남한이 여전히 강대국들에 의해 억압 받고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중적 증오를 제국주의 경쟁국들 (일본과 미국 같은)에게로 돌리는 것은 객관적으로 남한 부르주아지를 이롭게 한다.
16. 둘째, 강력한 역사적-이데올로기적 이유가 존재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은 결코 강대국인 적이 없고, 정반대로 외국 열강에게 반복해서 굴욕과 억압을 당해 왔다. 지난 20년 동안을 거쳐서 비로소 남한 독점자본은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한국은 늘 억압받아 왔고, 따라서 민족주의가 이러한 억압에 대한 정당한 해답이라는, 인민대중의 강력한 역사적 의식이 존재한다. 한국 자본이 이제 억압자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17. 마지막으로 좌익 조직들의 경우 스탈린주의의 강한 영향력과 그 기계론적 사고방식을 지적해야 한다. 모든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들처럼 스탈린주의는 변증법적 유물론적 방식으로 사회 발전을 분석할 수 없다. 그러나 맑스주의적인 과학적 접근법 없이는 2020년의 남한이 1980년의 남한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즉, 남한이 더 이상 자본주의 반식민지가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18. 그러한 실패는 단연코 그들만의 특유한 것이 아니다. 많은 독일 맑스주의자들은 1914년 이전의 10년 동안 ‘자’국이 제국주의가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많은 일본 사회주의자들은 ‘자’국을 자본주의 열강이 아닌 "반봉건" 국가로 간주했다. 스탈린주의 '일본공산당'은 1945년 이래 오늘날까지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임을 강력히 부인하며 정치군사 분야에서 미 제국주의에 대한 일본의 종속적 지위를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애국주의적 입장을 정당화한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러시아 스탈린주의자들과 좌파들은 후안무치하게 ‘자’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부정한다. 요컨대 자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사회애국주의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남한 좌익의 유별난 특징이 아니라 개량주의와 중도주의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해왔듯이, 그러한 실패는 항상 ‘자’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사회배외주의적 투항과 국제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대한 배신으로 귀결된다.
19. 남한의 제국주의 성격을 인정하는 것은 혁명가들에게 깊은 강령적, 전술적 결과를 불러온다. 남한의 맑스주의자들이 남한의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을 지지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한과 같은 제국주의 나라에서 “민족해방”은 국내 제국주의 독점 부르주아지에 대한 사회애국주의적 지지를 의미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혁명가들은 한국의 제국주의 경쟁국인 일본에 대한 보이콧 캠페인이나 어느 다른 형태의 배외주의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 그런 반동적인 캠페인은 노동자들을 지배계급에게 종속시키는 데 봉사할 뿐이다. 우리는 한국,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의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단결을 요구한다. 우리는 "주적은 국내에 있다!"라는 원칙에 입각한 레닌주의적인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을 지지한다.
20. 당연히, 이것은 혁명가들이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에 의한 야만적인 강제징용 및 성노예 체제에서 살아남은 한국 시민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의 정당한 우려들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혁명가들은 일본 기업 및 일본 정부에 대한 배상 요구를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일본의 전쟁범죄 한국인 피해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위한 투쟁이 재벌에게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가족에 대한 배상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중적이고 선동적인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혁명가들은 보이콧 캠페인이 한국 시민들의 이익에 봉사하지 않고, 그러한 캠페인 덕에 일본 경쟁자들의 제끼고 더 큰 시장 점유율을 획득할 수 있는 삼성, LG 등 재벌의 이익에 봉사할 뿐임을 설명해야만 한다.
21. 혁명가들은 한국인 희생자들의 이러한 정당한 주장이 양국 간 경쟁 고조를 위한 구실로 양국 지배계급에 의해 이용되는 것을 폭로해야 한다. 만약 한국 정부가 자국민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왜 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지 거의 75년이 지난 지금에야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