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점자본의 성격과 그에 따른 노동자 전위의 강령적 임무
미하엘 프뢰브스팅,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국제서기, 2019년 12월
차례
I. 몇 가지 일반적 고려 사항
1. 문제의 현실 유의미성
2. 정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구성요건은 무엇인가?
II. 남한 독점자본에 대한 개괄
3. 역사적 배경: 급속한 공업화를 가능케 한 이례적인 조건들
4. 고도로 산업화한 현대 자본주의국으로서의 한국
5. 한국 독점자본: 국내시장의 지배
6. 한국 독점자본: 세계시장에서의 글로벌 플레이어
7. 한국 독점자본: 자본수출의 역할
III. 남한의 제국주의로의 전화에서 비롯하는 몇 가지 정치적 문제들에 대하여
8. 노동귀족의 대두와 한국 노동자계급 내 불평등
9. 남한 제국주의의 정치적 역할과 그 제한적인 독자성
IV. 몇몇 반론에 대하여
10. 남한이 여전히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라는 스탈린주의적 신화
11. 아(亞)제국주의론의 오류
V. 반제국주의 강령과 혁명적 전술
12.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
13. 오늘 남한에서 반제국주의적 임무
보론: 역사적 유추 - 1891년과 1914년에 독일에서 맑스주의적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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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몇 가지 일반적 고려 사항
이하의 글은 필자의 독자적인 조사연구의 결과물이자 동시에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RCIT) 남한 동지들과의 집중 토론 및 협력의 결과물이다. 특히 필자는 이미 제국주의 문제에 관한 두 글을 낸 홍수천 동지에게 감사를 표한다.
1. 문제의 현실 유의미성
남한이 반(半)식민지에서 2000년대에 제국주의로 전화한 것은 맑스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이슈다. 남한의 혁명가들에게만이 아니라 전체 아시아 대륙과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문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세계경제에서 한국이 중요한 플레이어가 되었다. 삼성, 현대, LG 같은 한국의 주요 독점체들은 글로벌 엘리트 기업 군(群)에서 두드러진 멤버들이다.
둘째, 한국의 부상은 라이벌 일본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한판 붙어보겠다는 의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한 결과들 ㅡ 무역전쟁 개시부터 군사협력 협정 파기 (지소미아 종료)에 이르기까지 ㅡ 은 동아시아의 지리적 전략 환경과 이 지역의 미 동맹체제에 큰 파장을 미친다.
셋째, 남한의 변화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한반도는 오랫동안 북한에 대한 미 제국주의의 침략·도발을 고려할 때 세계정치에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반도는 거의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 ㅡ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ㅡ 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지역이다.
그 결과로, 이러한 변화는 혁명가들에게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른바 “민족해방 (NL)” 조류 ㅡ 남한의 스탈린주의 · 준 스탈린주의 조직들 ㅡ 의 주장과는 반대로, 노동자 전위가 자국의 “민족해방”을 위해 투쟁해야 할 전략적 임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남한 혁명에서 민족해방 과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민족해방” 투쟁도 실제로는 남한 독점 부르주아지에 대한 사회제국주의적 지지로 되어버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남한이 반식민지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전화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국 자본주의의 질적 비약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1987년 6월항쟁과 군사독재 퇴장 이후의 시기에 크게 고양된 노동자운동을 봉쇄하고 패퇴시키는 데 독점 부르주아지가 성공한 그 물질적 토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한국에서 노동귀족, 즉 제국주의 초과이윤에서 지불된 프롤레타리아트의 특권적 상층의 형성, 이것이 바로 노동자운동의 개량화와 체제내화, 그리고 그 거대한 관료화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에서 부르주아지가 제국주의 자본가계급으로 전화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개량주의가 한국 노동자운동에서 거둔 (일시적) 승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한 동안 RCIT는 한국이 반식민지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하는 것을 분석하면서 이 문제가 가지는 현실 유의미성을 지적해왔다. 우리는 이 연구가 한국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혁명적 투사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하의 연구는 RCIT 남한 동지들과의 토론을 위해 작성하여 얼마 전에 발표한 <테제>를 상세화한 것이다.
2. 정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구성요건은 무엇인가?
남한 제국주의의 특징을 보다 상세히 분석하기 전에 먼저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정의를 간략히 개괄해보자. 우리가 다른 글들에서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상세히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우리의 개념을 요약하는 것으로 한정하겠다.
맑스주의자로서 우리의 출발점은 볼셰비즘의 창건자이자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인 레닌이 정립한 바의 고전적인 제국주의 정의다. 레닌은 제국주의의 본질적 특징을, 경제를 지배하는 독점의 형성으로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레닌은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금융자본으로의 융합, 상품수출과 함께 자본수출의 증가, 세력권, 특히 식민지 획득을 위한 투쟁을 지적했다.
레닌은 제국주의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이론적 글인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내의 분열>에서 다음과 같은 제국주의 정의를 제시하고 있다.
“가능한 한 정확하고 완전한 제국주의 정의(定意)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국주의란 자본주의의 특수한 역사적 단계이다. 그 특수성은 세 가지다. 제국주의는 (1) 독점 자본주의, (2) 기생적인, 또는 부패해가는 자본주의, (3) 사멸해가는 자본주의다. 독점이 자유경쟁을 대체했다는 것이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경제적 특징이고 그 본질이다. 독점은 주되게 다섯 가지 형태를 취하며 나타난다. (1) 카르텔 · 신디케이트 · 트러스트 — 이러한 독점적 자본가 집단을 낳을 정도로 생산의 집적이 이루어졌다. (2) 대 은행들의 독점적 지위 一 서넛 내지 다섯 개의 거대 은행이 미국, 프랑스, 독일의 경제생활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3) 트러스트와 금융과두제(금융자본은 은행자본과 융합한 독점적 산업자본이다)가 원료자원을 장악하고 있다. (4) 국제적 카르텔에 의한 세계의 (경제적) 분할이 시작되었다. 그러한 국제적 카르텔은 이미 백 개도 넘는데, 이들이 세계시장 전체를 지배하며, 이 세계시장을 ‘사이좋게’ 분할하고 — 전쟁이 그것을 재분할할 때까지는 ‘사이좋게’ — 있다. 비독점 자본주의하에서의 상품 수출과 구별되는, 매우 특징적인 현상으로서의 자본 수출은 세계의 경제적 및 영토적 · 정치적 분할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5) 세계의 영토적 분할(식민지)이 완료되었다.”
여기서 보듯이, 레닌은 독점의 형성이 제국주의 시대에 경제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것을 한 점 모호함 없이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점은 위 인용문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레닌의 다른 수많은 진술로부터도 분명하다. 또 하나의 같은 시기 글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경제적으로 제국주의(또는 금융자본 ‘시대’ - 말의 문제는 아니다)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이며, 자유경쟁이 독점에 자리를 내줄 정도로 생산이 크고 거대한 규모를 띠는 단계이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이다. 독점은 트러스트, 신디케이트 등등으로, 거대 은행의 전능한 힘으로, 원료자원의 매점 등등으로, 은행자본의 집중 등등으로 나타난다. 경제적 독점이 미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의 유명한 책 <<제국주의론>>에서는 다시 이렇게 강조했다. “경제면에서 보면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이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레닌은 독점 자본주의 ㅡ 독점의 형성과 경제에 대한 독점체들의 지배, 열강의 세계정치 지배와 그에 따른 노동자계급 및 타 민족에 대한 억압·착취 ㅡ 가 제국주의의 본질임을 강조했다.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정의는 변증법적 파악이므로 일국을 고립시켜 보아서는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할 수 없다. 맑스주의의 방법론적 기초는 우리에게 각각의 사물, 각각의 현상을 고립시켜서가 아니라 다른 사물, 다른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스탈린주의적 탄압 이전인 1920년대 소련에서 대표적인 맑스주의 철학자 아브람 데보린은 이 문제를 이렇게 정식화했다. “세계에서 어떤 사물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전체의 나머지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국가의 경우에도, 주어진 한 국가는 별개의 단위로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그 국가가 다른 국가·민족과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보아야 한다. 국가란 정의상 복수의 국가들로 존재하기 때문에 홀로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이 점은 자명하다. 계급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다른 계급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노동자계급 없는 부르주아지란 없다. 농업 노동자와 농민이 없는 대지주란 없다. 같은 식으로 식민지·반식민지가 없는 제국주의 국가란 없다. 그리고 단 하나의 강대국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복수의 강대국들이 존재한다.
나아가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맑스주의 변증법적 이해는, 그 대상 [제국주의 국가]의 “많은 규정과 관계의 풍부한 총체” 속에서 그 대상을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제국주의 열강을 도식적인 방식으로 보아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하나의 모델만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널리 퍼진 오류가 존재한다. 즉 제국주의 국가는 미국 혼자이고, 제국주의 국가의 모델은 미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글들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이러한 접근법은 사회 일반의, 특수하게는 제국주의 국가의 발전에서의 불균등성을 완전히 무시한다. 이 같은 무시는 중대한 오류를 낳는데, 왜냐하면 레닌이 강조했듯이 “경제적·정치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절대적 법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발전은 한결 같지 않고 오히려 각 경우마다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실제로도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경제적 수준에서보다 군사적 수준에서 훨씬 더 강력한 강대국이다. 일본과 독일에서는 정반대의 경우가 사실이다. 게다가 보다 큰 제국주의 국가와 보다 작은 제국주의 국가가 존재하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미·중에서부터 스위스, 오스트리아, 벨기에까지).
이 같은 불균등성은 자연히, 미·중처럼 가장 지배적인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그 이외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우에 타 강대국 (말하자면 미국이나 중국)과의 동맹관계 ㅡ 그들이 타 강대국에 타협,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지어는 일정 정도 스스로를 타 강대국에 종속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동맹관계 ㅡ 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가져온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일본·서독의 발전과 그에 따른 그들의 미 제국주의에의 종속이 그 생생한 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같은 유럽의 보다 작은 제국주의 국가들은 독일과 프랑스 같은 유럽의 선도적 열강에 일정 정도 종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호주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다소간에 종속적인 지위를 점한다. 그리고 한국은, 이제 우리가 보겠지만 또 다른 예다.
그러므로 맑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을, 그들 발전의 이 측면 또는 저 측면만을 가지고서가 아니라, 그 총체성에서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해당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잘못 판단하고 그 결과, 정치적 혼동 속에서 계급투쟁 바리케이드의 올바른 쪽을 취하는 데 실패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끝으로, 운동을 본질적인 것으로 ㅡ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아니더라도 ㅡ 인식하는 것은 변증법의 기본 요건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그의 유명한 <<반뒤링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운동은 물질의 존재 양식이다. 운동 없는 물질은 결코 어디서도 존재해 본 적이 없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우주 공간에서의 운동, 각각의 전체에서의 미소한 물체의 역학적 운동, 열 또는 전류나 자력으로서의 분자운동, 화학적 분해 및 화합, 유기적 생명 등등의 세계의 이 모든 물질원자는 어느 순간에나 이상과 같은 운동형태 중의 어느 하나 또는 동시에 여러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지나 모든 평형상태는 오직 상대적이고 일정한 운동형태와의 관계에서만 비로소 의의가 있는 것이다... 물질 없는 운동과 마찬가지로 운동 없는 물질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운동은 물질 자체와 마찬가지로 창조될 수도 없고 파괴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와는 다를 수가 없는 이유는 모든 물질 ㅡ 자연에서와 사회에서의 ㅡ 은 외적 모순뿐만 아니라 내적 모순에 의해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 물질은 모순들의 통일이며, 이 모순들의 발전은 물질의 운동 동력이다. 레닌이 강조했듯이, “대립물의 통일 (일치, 일체성, 동일한 작용)은 조건적, 일시적, 과도기적, 상대적이다. 상호배제적인 대립물의 투쟁은 발전과 운동이 절대적인 것처럼 절대적이다.”
이 외견상 순 추상적인 문제는 국가들의 계급적 성격 분석에 고도로 적실성을 갖는다. 스탈린주의적 사유는 근본적으로 기계론적이며 변증법적 사고방식을 결여하고 있다. A는 A이고 A로 남는다, 끝! 모순과 변화 속에서 사고하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은 모순 및 그 모순으로 인한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의 운동을 인정한다. 맑스주의자들은 “현실 자체의 리듬과 운동을 반영하는” 변증법의 방법에 분석의 기초를 둔다.
오직 이러한 변증법적 접근만이 맑스주의자들로 하여금 계급들 간, 국가들 간 관계망의 발전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오직 이러한 변증법적 접근을 통해서만 맑스주의자들은 이 관계에서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고, 따라서 해당 국가의 가능한 계급적 성격 전화를 고려에 넣을 수 있다. 그 자체가 양질 전화 과정의 결과인 이러한 전화는 인류 역사에서 반복해서 일어났다. 7세기와 8세기에 비잔틴 제국이 고대 노예소유주 국가에서 봉건국가로 전화한 것은 인류 역사의 수많은 예들 중 하나일 따름이다. 보다 최근의 예를 든다면, 러시아를 비롯한 그 밖의 나라들에서 스탈린주의의 붕괴가 자본주의의 복고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 1970년대에 포르투갈 식민 제국의 붕괴가 포르투갈이